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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라는 구라의 탄생 _ 인문학의 시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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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한때는 인문학이 엄청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문학, 사학, 철학으로 대표되는 인문학이 무시 받는 현실을 개탄하고 거대 기업의 비호를 받은 대학들이 단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취업률이 낮고 효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관련학과들을 폐지하는 현실을 성토하는데 목소리를 더한 적이 있었다는 겁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도대체 왜 그랬나 싶은 생각을 합니다. 게다가 난 사회과학도인데. 본래 어설픈 사람들이 가장 잘 아는 듯이 시끄럽게 떠드는 법입니다. 냉정하게 말해 한 시대에 쓸모를 상실한 분과학문이라면, 당대의 효율이랄지 이익을 상실한 학문이라면, 구태여 이런저런 멋들어진 당위를 읊어대며 생존을 영위할 이유가 없는 거거든요. 인문학이란 도대체 뭐길래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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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로도토스의 흉상>



역사, 작은 의미로 인문학의 척추. 모교 교수의 농담 섞인 비유를 빌리자면 학문의 애미란 역사의 시작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서구적 의미의 최초의 역사서는 ‘Histroia' 라고 알려진 헤로도토스의 저서입니다. 헤로도토스의 히스토리아는 영화 300으로 잘 알려진 페르시아-아카이아 전쟁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 최초의 역사서는 장황하기도 무척 장황하여 정말이지, 무슨 옛날이야기 하듯이 주절주절 떠들어 놓기 바쁩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아직 문자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정말 옛날 얘기를 해야 했거든요. 그러니 사람들이 궁금해할만 한 소문이나 풍문들을 다 끼워넣고 흥미진진한 일화들을 막 뒤섞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읽는 역사책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서울대 뭐 이런데서 추천도서로 이 책을 꼭 채워 넣는데, 역사의 시발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지랄 맞고 지 멋대로 라는 걸 깨닫는 게 그렇게 가치 있나 싶기도 합니다.




문학은 어떨까요? 모든 고대문화들처럼 그리스 세계의 문화들 역시 구비문화가 출발점입니다. 최초의 문학은 시와 오페라와 연극이 마구 섞인 형태였습니다. 문학과 연극의 시조라 불리는 이들은 어땠을까요. 헤시오도스는 신들의 이야기를(theogonia), 호메로스는 영웅들의 이야기를(Ilias, odysseia), 소포클레스나 에우리피데스 같은 시인들은 이 영웅들과 신들의 추락을 이야기 거리로 삼습니다. 때로 도로에 나가 시가를 읊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연극의 형태를 갖추기도 합니다. 백분 토론서 모 평론가의 헛소리로 유명해진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x ex machina)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시가들의 상연 방식에 관해 분석하면서 나온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철학은 또 어떨까요? 철학은 그야말로 시정잡배들의 농담꺼리에 불과했습니다. 오늘날은 각별히 고전고양에서나 다루는 수사학은 12세기 최초의 대학이 생겨날 때 철학 등과 함께 최고로 중요한 과목이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그렇게 했거든요. 산파법 운운하며 ‘나는 나의 모름을 안다’는 소크라테스는 은퇴한 군인, 결론은 백수였고, 이데아의 이상국가를 꿈꾸던 플라톤은 무능한 부잣집 아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실용적인 수사학을 배워서 정치인이 되는 엘리트들을 비방한 어쩌면 최초의 사회부적응자라 불릴만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이미 그리스 내부에서도 소위 철학자들이 무능하고 쓸모없는 문제에 천착한다는 비난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강단철학이 상아탑에 갇혀있다고 그런 종류의 비난이 인문학의 죽음이라며 개탄하는데, 철학이라는 것이 본래 그런 대접을 받았던 겁니다. 오늘날 아이들의 윤리 교과서에서 배우는 이 철학자들이 현실 문제에 개입할 수 있게 된 건 고작 200년도 되지 않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백수, 게으름뱅이, 무능력자, 사회부적응자들이었습니다. 




동서양을 비교하며 인문학이란 것의 가치를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동양 세계와 서양 세계를 면밀하게 검토해 따져보면 동양은 전쟁영웅이 더 대접을 받고, 서양은 학문가나 이론가를 대단한 사람들 취급을 해주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것은 대단한 취급을 받지 않는 법입니다. 서양은 매일이 다툼이 끊이지 않는 문화였습니다. 자기 여자를 봤다는 이유로 칼을 꺼내드는 난폭하고 무식한 문명이었고 별 거지같은 이유로 매일 전쟁을 벌였습니다. 한국인이 일본을 싫어하는 것은 일본이 한국과 자주 다퉈서가 아니라 적게 다퉈서입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100년 전쟁이라는 공식 타이틀도 모자라 근대사까지 거의 매년 앙숙의 관계였고 프랑스와 독일은 더 지난합니다. 서양문명의 현실세계에서 정말로 유능한 사람들은 대부분 군인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역사책에 이름이 남을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현실에서 튕겨져 나온 쩌리들, 삼류들이 유능한 자들이 전쟁터로 몰려간 사이에 책을 쓰고 이론을 만들었던 겁니다. 그리고 난 무능해서 전쟁터에 나가지 못했다고 말하는 대신 학문의 위대함에 관해, 그 자신들의 고상한 취미 생활을 무척 가치 있는 것으로 포장합니다. 유능한 사람들은 다들 전쟁터에서 죽거나 다쳤고, 더 유능한 사람들은 굳이 글을 읽고 쓸 필요조차 없었거든요! 




동양은 학자들의 세계였습니다. 사회적 ‘아웃사이더’들이 왕따 당하면서 공부하던 서양과 달리 동양인들에게 인문학은 시험과목이었습니다. 동양 고전이라고 하는 논어, 맹자, 사기, 순자. 사서삼경에 삼국지, 서유기 같은 소설까지 딸딸딸 외워야 하는 것이 동양 문명이었던 거죠. 얼마 전 조선시대 선비들의 과거 답안지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한지로 한 10m 쯤 되던가요. 이는 바꿔 말하면 이런 책들을 외울 수 있을 만큼 사회가 안정돼 있었다는 뜻이며 이 시험들만 통과하면 어느 정도 성취가 보장되는 단단한 사회체계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그런 안정이 깨지면 본래 공부만 해서 싸움 같은 건 못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파이터들이 각광 받게 됩니다. 신숙주나 이이 같은 전세계적 대천재들 틈에서 이순신이 역사적 영웅 대접을 받은 것은 이순신 같은 인물이 우리 역사에 흔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양 문명이 패거리를 잘 짓는 건 패거리를 지을 만한 사회안정성이 보장됐기 때문이고, 서양 문명이 인맥을 통한 비즈니스 관계를 중시하는 것은 언제 관계가 단절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익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문학이 마술지팡이라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듯이 떠드는 최근의 유행이 거슬리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본래 대단한 출처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며 정말로 대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주장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란, 네가 말한 그들은 사회부적응자나 백수나 게으름뱅이나 무능력자가 아니라는 것 하나와. 그런 이들이 만든 생각이라고 해서 무익하거나 무효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첫 번째 비판은 가치가 없습니다. 그것은 사실의 문제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비판은 두 번째 비판입니다. 사회부적응자나 백수 등등이 만든 이론이라고 해서 유용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중요한 요소들을 포함하다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내 설명은 목적론이랄지 역사주의, 현실주의 같은 배경 속에서 관점을 획득하고 있는 설명입니다. 이 설명을 벗어나서 무능력자들이 어떤 역사를 가졌고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이었든지. 그들이 현실에서 별다른 대우를 받는 사람이란 것과 별개로 그들의 이론이 현재 사회와 세계에 기여한 내용이 중요하며 그래서 공부할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내 설명은 설득력을 잃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주장들마저도 일견의 이데올로그의 흔적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어떤 것을 은폐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이데올로그라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비유와 역사를 넘어선 또다른 이데올로그의 근본 말입니다. 인문학과 청춘을 이야기한다고 해놓고 구태여 인문학이란 무용하고 무익하다고 심지어 이데올로그라고까지 주장하려는 것은 그것이 바로 인문학적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이런 이데올로그가 무엇이며, 왜, 어떻게 만들어졌나는 다음 글에서 다루게 됩니다. 더불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 이데올로그들이 어떻게 잘못 전승돼 괴이한 형태로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본다면, 인문학과 상관없는 우리네 청춘들이 왜 인문학이란 이름을 소비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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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lene 2014.06.30 14:00
    덕분에 이데올로그라는 말을 알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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